일단 네이버블로그로 돌아갑니다.




이것저것 이유가 있는데 네이버블로그에 복귀글 쓰면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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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활동 무대는 다시 여기.


MBTI 잡상 만나는 정자




엄마랑, 엄마 친구분들이랑 술자리. 주 테마는 MBTI. MBTI가 얼마나 유용한 유형 분류일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꽤 재밌더라. 오늘은 제발 일찍 자야겠고 귀찮으니까 대강대강 내용만.

>이 사람 저 사람의 유형
-엄마: INTP
-나: ENFJ로 추정
확실히 N, J. E/I 모호함. I 성격이 있기는 한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반응 빠르고 감정 표현이 많은 걸 봐서는 E라고 분류하는 게 타당. 중요한 문제에서 논리적 계산보다는 어떤 사람이나 가치를 우선하며 자기가 가치를 두는 부분에만 관심이 많음: NF. 다만 스스로 NF적인 성격의 빈틈을 인지하므로 NT를 지향하는 심리가 강한 듯.

C와 K에 대해서도 재미삼아 엄마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C: ENTJ가 중론. ㅡ 설명대로면 ISTJ아니냐는 나의 반박이 있었지만 논문 쓰듯이 말하는 건 NT의 특성이라는 단언이 있었음...뭐라 더 이의를 달 수는 없었다.
-K: INTJ. 설명을 듣고 아무 이의도 달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몽땅 NT.
-소크라테스의 질문 방식이 딱 NT 성격의 발현
-플라톤은 멋진 NT
-사실 서양철학사의 거장들은 죄다 NT. 스피노자와 에카르트 정도가 NF... 그래서 주류에서 배척당한 듯.
-프롬도 NF일 가능성이 있음.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자, 인간의 성장과 계발을 굉장히 강조함.



>유형에 대한 이런저런 잡담(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NF는 피상적인 대화를 못 견뎌한다.
-공부하려는 사람 중에 NT가 많다.
-NT는 평범한 관계에선 별 문제가 없다. 친밀하고 각별한 관계에서 서툴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별 가치를 두지 않는다. 공부가 매개된 관계라면 좀 다를 수도.
-NT를 지향하는 NF는 NT의 장점을 높게 사기에 NT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외의 사람들은 NT들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 NT지향 NF는 주변에 NT가 많을 가능성 농후.
-NT와 NF는 궁합이 좋다. 특히 여자가 NF인 경우.



>제언
-치우치는 것보단 균형을 잡는 게 좋다.
-J의 결론짓기: 결론이 안 나오면 답답해하는 게 J인데, 답을 내려버리지 말고 계속 알아보면서 고민하는 게 필요함.
  + 내가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그게 옳아도 상대 입장에선 그렇지가 않을 수 있음.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함.



내가 물어보거나 운을 띄운 게 없는데 그냥 저절로 나온 얘기들 중에서 귀가 띄이는 부분만 모아 놓은 것이다. 듣다가 속으로 식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디 가서 MBTI 검사 받다가 저런 얘기 들었으면 콜드리딩이 수준급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ㅇ>-<
엄마 친구분이 요즘 하는 스터디그룹 사람들은 죄다 NT인데 자기는 NF라고 진단하셨기 때문에 ㅡ 그리고 내가 NT 지향 NF로 진단받았기 때문에 ㅡ NT와 NF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아빠와 프로이트의 유형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저 얘기들에 비해선 임팩트가 없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토지 관련 얘기했던 것도 기억에서 포맷...ㅇ<-< 그냥 저게 재밌어서 올려봤어요 네.

스터디 하시는 친구 분이 고등학교 때 논술 선생님이기도 해서 내 성격이나 사고 방식을 좀 알고 계시다. 오늘 얘기 나온 김에 살짝 따끔한 소리 해주시더라... 으음. 맞는 얘기지. 맞는 얘기다ㅇ>-< 으으.
빠른 답을 내지 않고 판단하고 단정지어 버리지 않는 것... 오래 전부터 필요하다고 느껴 왔던 부분이다. 만족스런 답이 나오지 않으면, 불완전하나마 답을 내리겠다는 게 아니라 알아보고 찾아보는 것이 더 나은 거겠지. 잠정적 결론 정도는 내 보는 게 좋은 연습이 되긴 하겠지만.




 


3텀 종교 세미나 하루를 돌아보는 해지는 언덕



3텀 종교 세미나는 다들 빨리 끝내고 싶어할 정도로 지리했다. 일차적으로 사회를 본 내 책임이었고 이차적으로 구체적인 쟁점을 마련해 놓지 않은 발제자(나)의 책임이었다. 나는 좋은 학회장이 아닌 것 같다.


신앙과 사회 의식이 분리되느냐, 다시 말해 종교의 성격이 그 정치적 해석의 범위를 어디까지 얼마나 규정짓느냐를 두고 합의가 되지 않았고, 이분법과 허수아비 때리기가 계속되어 논의는 빙빙 돌았다. 저쪽에서는 '관용'과 '민주주의의 규칙'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가끔 '교리를 다 알지 못하고 남의 신앙을 비판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관용해주는 것과 비판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 제목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가 아니라 '신은 위대하지 않다'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막을 수 없는' 것인지, '관용과 존중의 측면에서 봐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S선배와 J는 계속 전자를 인정한다면서 후자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했고 종교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는 건 안 된다는 당연한 얘기만 계속했다.


거기서 수준 차이가 확 나는 반박을 몇 번 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논의를 전환했어야 하는데, 생각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인 데다 말빨도 딸려서... 상당히 수세였다. 결과적으로 두 시간 내내 그 얘기밖에 못 했고 그나마 압도하지도 못했다.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비판하길 꺼린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것은 '논증은 안 되지만 진실이다'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일종의 취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향조차 공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논증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논한다. 거기에 대고 '내가 좋다는데 네가 뭐라고 판단질이냐'고 따지는 것은 감독의 인생 드라마와 민족주의적 열정에 감동받은 나머지 잠시 상식을 놓아버린 네티즌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물며 종교는 취향일 수 없다. 일요일 하루만의 인스턴트 신앙이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다. 신도의 사회 의식에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는 신앙은 뉴에이지류의 초월적 신관뿐이며, 자기 사회 의식에 맞게 교리를 해석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교회를 박차고 나가 자기에게 맞는 신앙 공동체를 찾는 신도도 분명 있지만 성직자의 가르침에 사회 의식이 따라가 버리는 신도도 분명히 있다. 종교를 성역화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 상식의 제재를 피해 성직자가 독단적으로 신도들의 의식을 빚어낼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어떤 요소도 개인의 가치관을 100% 결정짓지 못한다. 따라서 종교가 가치관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은 반론이 되지 않는다.
종교 안에서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말 역시 적절한 반론이 아니다. 그것이 특정 종교의 일반적 관점이든 자기 혼자 구축해낸 신앙이든 종교라는 이유로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 역시 필요하다.
문제를 개인의 폐쇄적인 태도 탓으로 돌리는 것도 종교 자체의 위험을 간과하는 것이다.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그 폐쇄적인 태도를 조장하는 경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절대자의 명령을 가정하는 순간 그것은 필연적이지는 않으나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결과가 된다.
몇천 년에 걸쳐 누적된 심오한 교리를 간단히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반론이 아니다. 상대가 신학자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신도들은 신학에 관심이 없으며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온 지혜에 감화되어 종교를 믿지도 않는다. 많은 경우에, 신자 갑의 신학적 지식은(그것이 언어화된 것이든 직관으로 아는 것이든) 비신자 을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으며 이 경우 을이 갑이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논박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다.

도킨스와 히친스는 성역을 깨부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이기제 제재할 수는 없는 불관용이라 보지 않는다. 건전하고 필요한 문제 제기지.


이렇게 짧게 말할 수 있는데-_-;


상대방의 논점과 논지, 근거를 분석하고 명료하게 반박하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정리해서 쉽게, 간결하게 말할 것.
내가 이기는 것보다는, 좋은 세미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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